Romantic Paris #2
2007년 05월 25일 12:30 at 19th District in Paris
소르본 지역으로 계획했었는데 (5,6구역) 정현이와 헤어진 뒤로 소르본으로 걸어가지 않고 이곳 19구역으로 왔다. “빈민가”라고 불리우는 이곳을 나는 왜 왔을까? 무엇을 찾기 위해 왔을까? 처음에 파리에서 어느 곳이 빈민가인지 물어봤을때 사람들이 되도록이면 안가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소르본을 권유했다. 그래서 오늘 정현이를 Saint-Michael 역에 데려다 주었다. (소르본과 출발지역이 같으므로)
그런데 어느새 나는 지하철을 타고 19구역 앞에서 내려 지금은 중앙에 들어와 있다. 무엇이 나를 19구역으로 이끈것일까?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일단 돌아다녀 보면서 이유를 찾아봐야겠다.
동일 13:45
평화롭다. 그리고 다른 어느곳보다 사람사는 냄새가 난다. 조용하지만 멈춰있지 않은 19구. 난 이런모습을 기대하고 온것이 아니였다. 그러나 이 모습의 19구가 맘에 든다. 빈민가의 모습이 아니라,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다 허물어져가는 낡은 건물들과 삶에 찌들린 군상을 보려하였으나 그 것은 19구 중에서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모습이었다. 실상은 더 넓은 곳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다. 19구의 입구의 그 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리는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동일 15:15 at Montmartte in Paris
몽마르뜨의 계단에 앉아서 사람들을 보고있다. 왜 모든 사람들은 이곳 몽마르뜨에 오고 계단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것일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사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 모습은 몽마르뜨에 세워져있는 사원과는 너무 이질적인 모습이라 마치 합성 사진을 보는것 같다. 합창단에서 혼자만 우렁찬 목소리로 다른박자, 다른 음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의 모습과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목소리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아니 부름만 못하다. 이곳에서 사원을 배경으로 찍는 사람중에 과연 사원과 어울리는, 동화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 대부분은 자기가 여기 몽마르뜨에 왔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증명하기 위해 찍는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후 “자신감”을 얻는다는 것도 위의 마지막 문장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해보지 않은 것을 해봤다는 것,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는 것은 내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로 인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신감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한 사람을 만나는 순간 모래성처럼 무너져버린다. 어떤의미에서 보면 이것 또한 경쟁의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을 당당하게 지탱해 줄 것이 자신의 내면의 성숙이 아니라 겉으로 치장된 껍질뿐인 경험이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내가 사진을 찍는 목적은 무엇일까? 왜 나는 구지 남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가려하고 경험하지 않은 것을 경험하려 할까? 이 행동은 내가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내 의식의 일부다. 그렇다 나도 남들과 다른척을 하지만 실상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더 잘나보이길 원하고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길 원한다. 나는 나만의 주관적인 눈을 가지지 못하고 아직도 남들의 시선 속에서 산다.
이런 행동들이 나를 더 잘나보이게 하지는 않는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순간순간 나오는 내 행동들은 앎이 곧 실천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오직 남들이 가지지 못한 시선을 가지고 싶다. 남들과 같은 눈으로 같은 위치에 서면 식상한 구도에 좀더 나은 노출의 사진을 얻어낼 뿐이다. 그리곤 포토샵으로 나머질 때울테지. 새로운 눈을 가진다는 것은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새로운 대상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고, 새로운 구도를 발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에겐 지금 이것이 가장 급한 문제다. 나머지는 지금의 내 카메라 'Dynax 5'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새로운 구도”를 찾아내고 삶에서 “순간”을 잡아내고 마지막으로 “대상에 더 접근”하려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