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8년

구글에 처음 입사한 지 8년이 막 넘었습니다. 예전에 3년, 4년 차에 썼던 회고 글들을 돌아보면 8년이라는 시간이면 꽤 긴 시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회사 안에서는 8년이 훌쩍 지나간 느낌이네요. 8년을 계속 구글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지내면서 있었던 일을 되짚어보려 합니다.

무슨 '티벳에서 7년'같은 제목이긴 한데요. 제가 2018년 9월 중순에 구글에 입사를 했으니, 이번이 딱 8년이 되는 시점입니다. 영화만큼 파란만장한 일까진 아니지만, 회사 안팎으로는 나름 다이내믹한 8년이었습니다.

처음 4년 반은 보안 칩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습니다. 오픈소스라서 외부에 공개되어있기도 한데요. 그 당시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파급효과가 클지 생각지도 못했었습니다. 그냥 공개되니까 부끄럽지 않게만 깔끔하게 코딩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더 이상 구글 안에서 그 프로젝트가 진행되진 않지만 칩은 여러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구글 안에서도 쓰이지만, 구글 밖에서도 여러 곳에서 뜯고 씹고 맛본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오곤 합니다. 검증 환경이나, 인프라 환경, 디자인 코드가 꽤 훌륭한 표본인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오픈타이탄 코드 이야기를 들으면 속으로 뿌듯하기도 합니다.

그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구글에 돌아와 3년간 TPU 설계에 참여했습니다. Monorepo에서 Multirepo 환경으로 바뀌는 첫 프로젝트에 단 한 명의 인테그레이션 엔지니어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선 느낀 바가 많았죠. 나중에 자세히 썰을 풀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아무튼 갖은 고생을 하고 몸을 갈아넣으며 두 프로젝트를 마치고 그중 처음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TPU8t 라는 이름으로 올해 초에 공개가 되었죠.

손톱보다 작은 칩을 만들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패키지의 칩을 만들어 보는 경험은 놀라웠습니다. SSD 설계를 할 때에도 그리 작은 칩이 아니었는데, 그때의 검증시간, 합성시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 걸리는 검증, 합성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고, 그걸 대비해서 사소한 설계 하나도 얼마나 크게 프로젝트에 영향이 가는지 알 수 있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테그레이션 일과 SoC 리드 일을 병행하는 것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무척 고된 일이었습니다. 같이 일해야 하는 벤더나 팀원이 다른 시간대에서 일하고 있어서, 잦은 이른 아침, 밤늦은 미팅이 있었고, 주간에는 인테그레이션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추가로 증원되는 인력도 없어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몸을 갈아넣고 있었습니다.[1]

그리고 리드와 인테그레이션이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건 아니라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마 작년 말부터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네요. 그러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부서에서 8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회사를 세 곳이나 다닌 것과 같은 8년인데요. 그도 그럴게, 시큐리티, TPU, 퀀텀 세 팀이 모두 각각 다른 dev. flow로 일을 해서 매번 새롭게 배워야 했고, 팀원도 처음 두 팀은 겹치긴 했지만, 세 번째 팀은 아예 다른 팀원과 일해야 해서, 같은 뱃지를 들고 있는 것만 아니면 정말 다른 회사 같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 2022년부터 써온 랩탑은 그대로인 건 함정. 언제 새 걸로 바꿔줄지....)

랩탑은 4년째 그대로지만, 다루는 기술은 손톱만 한, 그렇지만 복잡한 알고리즘의 보안 칩에서, 세상에서 가장 큰 TPU로, 그리고 이제는 양자역학의 세계로 매번 널뛰기를 했습니다. 한 회사 안에서 이렇게 결이 완전히 다른 프로젝트를 깊게 파볼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물론 매번 새로운 도메인과 툴체인에 적응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때로는 체력의 한계를 마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새로운 것을 배우고 만드는 재미 때문에라도 이 일이 싫증이 나지 않네요.

이제 막 퀀텀 팀에서 또 한 번 신입사원이 된 기분으로 삽질을 하고 있습니다. 8년 전 구글에 처음 들어왔을 때처럼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합니다. 다음 회고를 쓸 땐, 9년 차일지 10년 차일지 모르겠지만, 양자 칩에 대한 이야기로 썰을 풀 수 있기를, 그리고 그땐 좀 더 빠릿한 랩탑을 쓰고 있기를 바라봅니다.

  1. 지금은 다시 보니 최근 거의 팀원이 두 배로 늘었더군요. 새로운 인원이 적응하고 나면 좀 업무의 강도가 낮아질 것 같아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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