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여행 #03 - 워싱턴 DC & 근교: 역사와 대자연의 교차로
동부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이하 DC)였습니다. 앞선 보스턴이나 뉴욕과는 달리, 고층 빌딩 없이 넓게 뻗은 대로와 녹지, 웅장한 백색 대리석 기념관들이 어우러진 계획도시 특유의 격조와 차분함이 느껴지는 도시였습니다. DC 중심부는 물론, 버지니아와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어진 근교 로드트립까지 다채롭게 즐겼던 1주일이었습니다.
내셔널 몰(National Mall)과 기념관들, 그리고 박물관들
DC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죠. 바로 내셔널 몰(National Mall)입니다. 웅장하게 솟아오른 워싱턴 기념탑(Washington Monument)을 중심으로, 서쪽 끝 링컨 기념관(Lincoln Memorial)의 거대한 대리석 좌상과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를 마주했습니다.
링컨 기념관 앞 광장에서. 파란 하늘 위로 뻗은 비행기 구름과 우뚝 솟은 기둥들이 장관을 이룹니다.
내셔널 몰 양옆으로 늘어선 세계 최대의 복합 박물관,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 박물관군을 둘러보았습니다. 항공우주박물관, 자연사박물관, 국립미술관 등 방대한 인류의 지식과 역사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게 열려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국립 9/11 펜타곤 메모리얼 (National 9/11 Pentagon Memorial)
DC 외곽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미 국방부(Pentagon) 청사 남서쪽에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펜타곤 공격으로 희생된 184명을 기리는 국립 9/11 펜타곤 메모리얼이 평화롭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뉴욕의 9/11 메모리얼 풀에 이어 마주한 또 하나의 숭고한 추모 공간이었습니다.
184명의 희생자를 기리는 캔틸레버형 스테인리스 벤치와 아래로 맑게 흐르는 추모
수로. 나무 그늘 아래서 아이들과 함께 잠시 머물며 시간을 가졌습니다.
희생자들의 출생 연도(1930년~1998년) 순으로 질서정연하게 놓인 184개의 스테인리스 벤치 아래로는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흐르고, 나무 그늘이 고요한 위로를 건네주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피격 비행기 탑승 희생자의 벤치는 비행기가 날아온 하늘 방향을, 건물 내부 희생자의 벤치는 펜타곤 건물 벽면을 향하도록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포토맥 강변의 옛 정취: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DC 시내를 벗어나 포토맥 강을 따라 남쪽 버지니아의 올드타운 알렉산드리아로 향했습니다. 조약돌이 깔린 고풍스러운 거리와 18~19세기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평화로운 정취를 자아냈습니다.
18세기 조지아 양식의 대저택 칼라일 하우스(Carlyle House Historic Park) 정원길.
푸른 녹음과 붉은 벽돌길 사이를 걸으며 느낀 올드타운의 고즈넉한 정취.
푸른 산맥의 능선을 달리다: 셰넌도어 국립공원 (Shenandoah National Park)
도시를 벗어나 버지니아 서부의 셰넌도어 국립공원으로 드라이브를 떠났습니다.
스카이라인 드라이브 전망대(Overlook) 피크닉 테이블에서 시원하게 펼쳐진 블루리지
산맥 능선을 바라보며.
국립공원 숲길을 따라 만난 시원한 산간 계곡. 맑은 물에 발을 담그고 자연 속
휴식을 즐겼습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길게 이어지는 105마일의 스카이라인 드라이브를 달렸습니다. 굽이굽이 전망대(Overlook)에 멈춰 설 때마다 발아래로 펼쳐지는 푸른 셰넌도어 풍경은 캘리포니아의 대자연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세 주와 두 강이 만나는 곳: 하퍼스 페리 (Harpers Ferry)
다음 근교 목적지는 포토맥 강과 셰넌도어 강이 합류하는 절경에 위치한 하퍼스 페리(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였습니다. 웨스트버지니아, 버지니아, 메릴랜드 3개 주의 경계가 맞닿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두 강이 합류하는 하퍼스 페리의 넓은 강변 너럭바위에 앉아. 시원한 강물과 건너편
메릴랜드 절벽의 웅장한 풍광이 펼쳐집니다.
바위 틈새에서 만난 뜻밖의 야생동물. 따뜻한 햇볕을 쬐러 나온 물뱀과 파란
실잠자리를 신기하게 관찰했습니다.
강물이 굽이쳐 흐르는 절벽 아래 자리 잡은 19세기 벽돌 마을과 존 브라운의 봉기로 잘 알려진 남북전쟁 이전의 역사적 현장들이 자연과 그림처럼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언덕 전망대에 올라 강과 철교, 그리고 옛 마을을 내려다보며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실감했습니다.
마운트 버넌(Mount Vernon)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알렉산드리아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 조지 워싱턴의 저택이자 안식처인 마운트 버넌(Mount Vernon)을 찾았습니다. 포토맥 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완만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대저택과 농장 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저희가 갔던 날이 독립기념일이라 예전 초기 미국군 복장으로 퍼레이드도 하고, 총과 대포를 쏘는 시연 행사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지 워싱턴 저택(Mount Vernon) 뒤편 언덕에서 바라본 포토맥 강. 푸른 강물 위로
요트들이 유유히 떠 있고 건너편 메릴랜드의 녹음이 펼쳐집니다.
마운트 버넌의 강변 벽 기둥에 올라서서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손을 맞잡은 순간
3주간의 동부 여행을 마치며
보스턴의 차분한 사색, 뉴욕의 숨 가쁜 활기, 그리고 DC와 주변 산하가 안겨준 깊이 있는 휴식까지. 2022년 여름의 3주는 미국 동부가 지닌 다채로운 결을 온전히 경험할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여정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가 이륙하던 시각이 독립기념일 밤이라, 이륙하면서 DC에서 피어오르는 불꽃놀이를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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