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 여행 #01 - 보스턴 & 근교: 지성과 사색의 시간
미국 동부 여행의 첫 번째 여정은 보스턴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답게 붉은 벽돌 건물과 유서 깊은 역사 유적이 차분한 학문의 도시 분위기와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일주일 동안 보스턴 시내와 케임브리지의 대학가, 그리고 근교 월든호수와 케이프 코드까지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보스턴 시내와 비컨힐(Beacon Hill), 그리고 노스엔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인 보스턴 커먼(Boston Common)을 지나, 보스턴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주택가인 비컨힐(Beacon Hill)로 향했습니다. 붉은 벽돌 건물들 사이로 둥근 조약돌이 깔려 있는 좁은 골목길 에이콘 스트리트(Acorn Street)는 마치 19세기 과거로 시간을 되돌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붉은 벽돌 건물과, 성조기가 걸린 에이콘 스트리트(Acorn St)의 둥근 조약돌 길을 걷는 순간.
비컨힐을 내려와 노스엔드로 향하는 길, 프리덤 트레일을 따라 늘어선 퀸시 마켓(Quincy Market)의 활기찬 인파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버먼트 센터 근처 스타벅스 건물 외벽에 걸린 거대한 황금 주전자(The Steaming Kettle)도 눈에 띄었습니다. 원래는 주전자 주둥이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는데, 한여름이라 그런지 스팀 없이 조용히 매달려 있던 모습이 문득 기억에 스쳐 가네요.
보스턴에 머무는 동안 랍스터 요리는 원 없이 즐겨보자는 생각이었기에, 출출해진 배를 안고 노스엔드에 위치한 소박한 맛집 Pauli's를 찾아갔습니다. 버터 향이 진하게 배어 나오는 빵 사이에 넘쳐흐를 듯 푸짐하게 올려진 따뜻한 랍스터 롤은 일품의 맛이었네요. 여행을 다녀온 지 한참이 지나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서 가족 모두 다시 가서 먹어보고 싶어 하는 맛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몇 번 랍스터 롤을 도전해 보았지만, Pauli's 만큼 따뜻하고 고소한 Warm Lobster Roll의 맛을 내는 가게는 아직 찾지 못했네요.
보스턴 노스엔드 세일럼 스트리트의 Pauli's에서 맛본 푸짐한 랍스터 롤과 클램 차우더
학문의 요람: 보스턴 대학교와 하버드
머물렀던 숙소가 MIT 바로 옆이었습니다. 근처에 MIT, 보스턴 대학교 (BU), 하버드 대학교가 있죠. 며칠동안 이 대학들을 천천히 거닐었습니다.
BU 브릿지에서 내려다본 찰스 강. "SINK OR SOAR" 문구가 적힌 철교 너머로 보스턴 도심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집니다.
미국의 여느 대학이 그렇듯, 하버드 대학도 대학과 외부를 가르는 명확한 경계가 없이 이리 저리 건물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도대체 어디를 구경해야 할 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일단 지도에서 하버드라고 보이는 곳을 몇곳 가 보았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진 못했네요. 산책을 하다보니 하버드 로스쿨(Harvard Law School)의 웅장한 그리스 신전풍 석조 건물인 랭델 홀(Langdell Hall) 앞 잔디밭 산책로에 다다랐습니다. 수많은 법학자와 역사적 인물들이 거쳐간 시간의 무게 속에서, 아이를 등에 업고 캠퍼스 길을 거닐며 학문의 요람이 지닌 깊은 품격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건 뻥이구요. 아이가 걷는 걸 너무 힘들어해서 등에 업고 다녔습니다. ㅠ_ㅠ
하버드 로스쿨 랭델 홀의 웅장한 원주 기둥 앞 산책로에서 아이를 업고 걸어가는 시간
케임브리지 골목의 살아있는 랍스터: 얼라이브 앤 키킹 (Alive & Kicking Lobsters)
숙소가 있던 케임브리지 주택가 골목 안쪽에는 또 다른 잊을 수 없는 랍스터 명소, Alive & Kicking Lobsters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주택 차고 같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수조 속 살아 움직이는 싱싱한 랍스터를 직접 고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큰 찜통에 즉석으로 쪄주는 독특한 시스템이었습니다. 야외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갓 쪄낸 새빨간 랍스터 두 마리와 달콤한 옥수수, 그리고 조개찜(Steamers)을 한 쟁반 가득 받았습니다. 따끈따끈하고 탱글탱글한 살을 녹인 버터에 푹 찍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네요! 노스엔드의 랍스터 롤과는 또 다르게, 즉석에서 생 랍스터를 쪄 먹는 신선함과 투박한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의 Alive & Kicking Lobsters에서 직접 고른 살아있는 랍스터를 즉석에서 쪄낸 푸짐한 한 상. 신선한 랍스터와 옥수수, 조개찜(Steamers).
독립전쟁의 격전지: 찰스타운 벙커힐 기념탑 (Bunker Hill Monument)
프리덤 트레일의 북쪽 종점이자 미국 독립전쟁 초기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인 찰스타운(Charlestown)의 벙커힐(Bunker Hill)을 방문했습니다.
언덕 정상에 우뚝 솟은 거대한 화강암 오벨리스크, 벙커힐 기념탑 앞 푸른 잔디마당에는 아이들이 죽마타기를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높다란 기념탑을 배경으로 죽마 균형을 잡으며 아이들과 재밌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푸른 하늘과 벙커힐 기념탑 오벨리스크를 배경으로 잔디밭에서 죽마 타기
근교의 고요한 쉼터: 콩코드와 월든 호수 (Walden Pond)
보스턴 시내를 벗어나 서북쪽으로 약 30~40분 정도 달려 월든 호수(Walden Pond)를 찾았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2년 2개월 이틀동안 숲속 오두막에서 자급자족하며 월든(Walden)을 써 내려간 바로 그 장소입니다.
많은 사람이 월든에서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고, 우리 가족도 산책도 하고, 호수 안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물속도 보며 시간을 보냈네요. 보스턴 시내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잔잔하고 투명한 월든 호숫가 벤치에 앉아 월든 호수의 여유로움을 즐긴 순간
대서양의 바람을 마주하다: 케이프 코드 (Cape Cod)
매사추세츠 동쪽 끝, 대서양을 향해 낫 모양으로 뻗은 반도 케이프 코드(Cape Cod National Seashore)로 향했습니다. 직진거리로는 보스턴에서 멀진 않은데, 6번고속도로를 타고 꽤 가야하더군요.
레이스 포인트 비치(Race Point Beach)의 광활한 백사장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았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하얀 파도를 막아보겠다고 모래 둑을 쌓으며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대서양의 웅장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보스턴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만끽했습니다.
가는 길, 오는 길또한 여유롭게 드라이브 할 수 있고, 중간 중간 멈춰서 작은 마을도 구경하고 알찬 시간이었습니다.
케이프 코드의 드넓은 모래사장에서 밀려오는 하얀 파도를 맞으며 모래 둑을 쌓고 즐거워하는 아이들
보스턴을 뒤로하며
화려함보다는 단단한 지성과 역사의 품격, 그리고 호수와 대서양이 주는 청량함이 공존하던 보스턴에서의 여정. 일주일간의 깊은 여운을 마음에 담고, 다음 목적지인 거대한 메가시티 뉴욕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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